박성태의 뉴스쇼 · 조회 15.1만회 · 2026. 8. 14.
이 영상은 한 연예인의 발언으로 불거진 안상호 박사의 친일 논란을 다룹니다. 안상호는 고종을 치료했던 의사였으나, 일본 유학, 일본인과의 결혼, 친일 단체 가입, 그리고 자신을 일본인으로 지칭하는 언론 인터뷰 등 친일 행적이 드러났습니다. 영상은 안상호가 공식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와 고종 독살설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설명하며, 친일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영상은 안상호가 관비 유학으로 일본에서 의사가 되었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으며, 국내 최초로 서양 의술 진료소를 개업했음을 언급합니다. 주요 친일 행적의 근거로는 그가 일본인 학교에 딸을 보낸 점, 1916년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은 유일한 한국인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점, 그리고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일본인'으로 지칭하며 자녀들에게 일본어만 쓰게 한다고 발언한 점을 제시합니다. 고종 독살설에 대해서는 1919년 1월 21일 고종 승하 직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결혼식(1월 25일)이 예정되어 있어 일본이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과, 윤치호 일기의 기록이 1년 7개월 후 전언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들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합니다.
이 영상은 특정 연예인의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을 계기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친일 행위의 복잡한 맥락을 분석하는 교육적 프레임을 사용합니다. 단순히 친일파 명단에 올랐는지 여부를 넘어, 개인의 행적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에 대한 후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과거사 청산의 미흡함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친일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고, 현재 사회의 책임 의식을 고취하도록 유도합니다.
영상은 안상호가 18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한국인 최초로 의사 활동을 시작했고, 고종을 치료했으며, 1907년 종로에 진료소를 개설하여 국내 최초 개업 서양 의사가 되었다는 점을 사실로 제시합니다. 또한, 그가 1916년 대정실업친목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자신을 일본인으로 표현하며 자녀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다고 보도된 점도 사실로 언급합니다. 고종 독살설은 후속 연구를 통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없는 것은 중요한 친일 행위 기준(구체적인 친일 행위, 조직의 간부 여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덧붙입니다.
“알고 보니 이분이 친일 논란이 거센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이 명단에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그 행적은 친일 행적이 많았다.”
“친일파의 어떤 문제 그리고 보통 우리가 죄라고 평가를 하는 부분들은 당연히 그 벌로서 평가를 해야 되지만 그 공동체 안에서 이익을 받거나 또 때에 따라서는 그게 가족인 경우에는 책임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영상은 친일인명사전 등재 기준이 '명백한' 주요 친일파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언급하며, 안상호가 등재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설정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회적 갈등이나 반발, 그리고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개인이 겪었을 수 있는 복합적인 선택의 어려움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은 부족합니다. 또한, 친일 행위의 스펙트럼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명단에 없는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책임'의 범위와 적용 방식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 제시 없이 시청자들의 성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영상의 톤은 차분하고 분석적이며 교육적입니다. 진행자와 전문가는 감정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역사적 사실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논란의 인물에 대해 단정적인 평가보다는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며 시청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